이 편 영상 보기 →

기록에서 찾은 이야기자료로 더 깊이 읽는 웹 기사
BEHIND THE STORY

사라진 고대 그림은 어떻게 엘 그레코의 불씨가 되었나

엘 그레코의 《불씨를 부는 소년》은 고대 회화를 그대로 복원한 그림도, 후원자 풀비오 오르시니의 주문이 확인된 작품도 아니다. 남아 있는 편지와 소장 기록, 플리니우스의 문장, 시지각 연구를 함께 보면 이 작은 화면은 사라진 작품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발명한 젊은 화가의 실험에 가깝다.

이야기 읽기 ↓
원문 자료와 함께 읽는 확장 기사

#엘그레코 #불씨를부는소년 #우화 #서양미술사 #미술사 #명화이야기 #그림이야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미술 #로마미술 #고대그리스미술 #안티필로스 #플리니우스 #줄리오클로비오 #풀비오오르시니 #파르네세가문 #명암법 #빛과그림자 #카라바조 #렘브란트 #야코포바사노 #톨레도 #스페인미술 #미술인문학 #예술이야기 #행간예술

원작도 밑그림도 남지 않은 고대의 그림을, 단 한 줄의 설명만 읽고 다시 그릴 수 있을까? 엘 그레코는 불씨와 얼굴 사이의 짧은 거리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숨겨 놓았다.

01 / STORY추천장에 적힌 ‘티치아노의 제자’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1570년 11월 16일, 줄리오 클로비오는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에게 한 젊은 크레타 화가를 소개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문서실이 소장한 자료는 이 편지의 타자 전사본으로, 엘 그레코를 베네치아에서 막 로마에 온 ‘티치아노의 젊은 제자’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이 표현이 실제 추천장에 있었던 사실은 확인된다. 다만 티치아노의 공방에서 정식 도제로 일했다는 계약서나 등록 기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추천자가 유력 후원자에게 화가를 돋보이게 하려고 쓴 표현이라는 성격도 함께 보아야 한다. [1] [3]

클로비오가 특별히 내세운 작품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자화상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연보에 따르면 그 그림은 로마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고 소개됐고, 엘 그레코는 파르네세 궁전에서 약 19개월 동안 머물 공간을 얻었다. 자화상 자체가 사라졌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무엇에 감탄했는지는 복원할 수 없다. 남은 것은 한 화가의 경력 초기에 작품보다 편지가 먼저 문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2] [1]

02 / STORY클로비오가 펼쳐 보인 책은 지금도 뉴욕에 있다

엘 그레코가 그린 클로비오의 초상에서 노인은 책상 앞에 앉아 한 권의 화려한 책을 펼친다. 이 물건은 막연한 학자의 소품이 아니다.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목록은 그것을 클로비오가 파르네세 추기경을 위해 완성한 《파르네세 기도서》로 식별한다. 초상화의 첫 소유자가 1600년 이전의 풀비오 오르시니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엘 그레코와 오르시니를 직접 연결하는 확실한 고리 가운데 하나는 이 초상화의 소장 이력이다. [5]

그림 속 책은 바다를 건너 뉴욕 모건 도서관에 보존돼 있다. 모건의 필사본 기록에 따르면 이 기도서는 1546년 로마에서 제작됐으며, 26쌍의 세밀화와 복잡한 장식 테두리를 갖춘 라틴어 필사본이다. 초상화 속 클로비오의 손가락과 실제 책의 페이지를 함께 살피면, 엘 그레코가 인물의 얼굴만 그린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 쌓은 기술과 후원 관계까지 한 화면에 압축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6] [7] [5]

엘 그레코의 줄리오 클로비오 초상, 약 1571~1572년
엘 그레코의 줄리오 클로비오 초상, 약 1571~1572년
El Greco · · Web Gallery of Art : Image Info about artwork wga QS:P11807,"g/greco_el/03/0302grec" 원본 자료 · Public domain · · 웹용 크기 조정 및 JPEG 변환

03 / STORY오르시니가 소년 그림을 주문했다는 증거는 없다

파르네세 궁전의 사서 풀비오 오르시니는 고대 문헌과 유물에 밝았고 엘 그레코의 작품도 소장했다. 이 때문에 그가 플리니우스의 이야기를 화가에게 알려 주고 《불씨를 부는 소년》을 주문했으리라는 설명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현재 확인되는 국가 문화재 기록에서 오르시니는 클로비오 초상화의 첫 소유자로 명시될 뿐, 소년 그림의 주문자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교류는 확인되지만 특정 작품의 제작 지시까지 이어지는 문서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5] [4]

소년 그림의 초기 소장 경로도 이 차이를 보여 준다. 문화재 목록은 작품이 늦어도 1641년 이전 파르네세 궁전에 있었다고 적지만, 그보다 앞선 최초 주문자나 소유자는 밝히지 않는다. 오르시니가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어도, ‘오르시니의 주문으로 그렸다’고 확정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둘러싼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가 가장 확실한 기록인 경우는 드물다. [4] [5]

04 / STORY플리니우스가 남긴 것은 완성된 설계도가 아니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35권에는 화가 안티필로스가 불을 부는 소년과, 불빛이 방 안과 소년의 얼굴에 반사되는 효과로 찬사를 받았다는 짧은 기록이 나온다. 고대 원작의 크기, 인물의 옷, 손의 자세, 촛불의 위치는 설명되지 않는다. 엘 그레코가 플리니우스의 문장을 직접 읽었는지, 궁정의 학자에게 들었는지도 입증되지 않았다. 두 작품을 연결하는 근거는 소재와 빛의 효과가 놀랄 만큼 잘 맞는다는 점이다. [10] [9] [12]

카포디몬테의 화면에서 소년은 왼손의 타는 나뭇조각에 바람을 보내고, 오른손의 초를 불씨 가까이 가져간다. 검게 탄 심지와 녹기 시작한 밀랍은 곧 불이 옮겨붙으리라는 다음 순간을 만든다. 이 촛불과 구체적인 동작은 플리니우스의 짧은 문장에 없는 요소다. 엘 그레코는 사라진 그림을 복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을 살리는 실제 행동을 관찰하고, 고대의 명성을 새로운 장면으로 번역했다. [8] [11] [10]

엘 그레코의 《불씨를 부는 소년》, 약 1570년
엘 그레코의 《불씨를 부는 소년》, 약 1570년
El Greco · · Google Arts & Culture — FAE0gvTJETShHQ 원본 자료 · Public domain · · 웹용 크기 조정 및 JPEG 변환

05 / STORY아래에서 온 빛은 왜 얼굴을 낯설게 만드는가

소년의 코 아래와 볼은 밝지만 눈두덩과 이마는 어둡다. 우리가 낮에 보는 얼굴에서는 대개 빛이 위에서 오므로 눈썹과 코 아래에 그림자가 생긴다. 이 그림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힌다. 시지각 실험들은 명암만으로 입체를 판단해야 할 때 사람들이 빛이 위쪽에서 온다고 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아래쪽 불씨가 만든 얼굴은 익숙한 규칙을 거슬러 평범한 표정까지 긴장된 표정처럼 보이게 한다. [13] [14] [8]

이 효과를 타고난 고정 규칙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른 연구에서는 화면 주변의 광원 정보가 명암에 대한 판단을 바꿀 수 있으며, ‘빛은 언제나 위에서 온다’는 가정의 힘도 상황에 따라 약해진다고 보고했다. 엘 그레코의 화면에는 창문이나 등잔 같은 다른 광원이 없다. 관람자는 불씨 하나만을 근거로 얼굴의 입체와 공간의 깊이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배경의 어둠은 빈 공간이 아니라 시선을 통제하는 실험 장치처럼 작동한다. [15] [16] [8]

06 / STORY한 소년은 세 인물이 되었고, 그림은 로마에서 나폴리로 갔다

엘 그레코는 훗날 소년 옆에 원숭이와 웃는 남자를 배치해 같은 불씨를 수수께끼 같은 집단 장면으로 바꾸었다. 에든버러의 작품은 약 1580~1585년으로 분류된다.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은 원숭이를 자연을 흉내 내는 회화의 능력, 악덕, 욕망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정확한 뜻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힌다. 바니타스, 욕망에 대한 경고, 잊힌 속담이라는 해석이 경쟁하고 있으므로 제목 《우화》가 하나의 정답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12]

한 인물만 그린 나폴리의 그림은 파르네세 가문과 함께 긴 여행을 했다. 기록상 로마의 파르네세 궁전에서 1662년 파르마로 옮겨졌고, 1734년 카를로 디 보르보네가 파르네세 유산을 계승하면서 나폴리에 도착했다. 에든버러의 세 인물 판본은 1989년 세금 대신 국가에 귀속되는 제도를 통해 공공 컬렉션에 들어왔다. 작은 불씨를 그린 여러 화면은 서로 다른 왕가와 상속, 조세 제도를 거쳐 오늘날의 박물관에 흩어졌다. [4] [12]

엘 그레코의 《우화》, 약 1580~1585년
엘 그레코의 《우화》, 약 1580~1585년
El Greco · · National Galleries Scotland 원본 자료 · Public domain · · 웹용 크기 조정 및 JPEG 변환

기록으로 보는 흐름

  1. 1546년줄리오 클로비오가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을 위한 《파르네세 기도서》를 로마에서 완성했다. 이 책은 훗날 엘 그레코의 클로비오 초상에 등장한다. [6] [5]
  2. 1570년 11월 16일클로비오가 파르네세 추기경에게 편지를 보내 엘 그레코를 소개하고 거처를 부탁했다. [1]
  3. 1570~1572년경엘 그레코가 로마 체류기에 《불씨를 부는 소년》을 제작한 것으로 분류된다. [4] [8]
  4. 1572년 7월 6일·10월 18일엘 그레코는 파르네세 궁전에서 물러나게 된 일에 항의하는 편지를 썼고, 같은 해 가을 로마의 산 루카 화가 조직에 등록했다. [2]
  5. 1580~1585년경엘 그레코가 소년 옆에 원숭이와 남자를 더한 에든버러의 《우화》 판본을 제작했다. [12]
  6. 1662~1734년소년 그림은 로마에서 파르마로 옮겨진 뒤 1734년 파르네세 유산의 일부로 나폴리에 도착했다. [4]

참고한 자료

  1. 런던 내셔널 갤러리 문서실 — 줄리오 클로비오가 파르네세 추기경에게 보낸 추천장 기록
  2. 바티칸 박물관 — 엘 그레코 연보
  3. 그리스 국립미술관 — 엘 그레코, 보편적 그리스인
  4. 이탈리아 문화부 문화재 총목록 — 《불씨로 초를 켜는 소년》
  5. 이탈리아 문화부 문화재 총목록 — 《줄리오 클로비오의 초상》
  6. 모건 도서관·박물관 — 《파르네세 기도서》 MS M.69
  7. 모건 도서관·박물관 — 《파르네세 기도서》 디지털 이미지 목록
  8. 카포디몬테 미술관 — 《엘 소플론》 세부 해설
  9. 시카고대학교 LacusCurtius — 플리니우스 《박물지》 제35권 라틴어 본문
  10. Attalus — 플리니우스 《박물지》 제35권 영어 번역
  11. 킴벨 미술관 — 카포디몬테 전시 교육 자료
  12.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 엘 그레코 《우화》
  13. Journal of Vision·PMC — 형태 단서가 광원 방향 지각에 미치는 영향
  14. PNAS·PMC — 인간 두뇌의 조명 방향 사전 지식 연구
  15. PeerJ·PMC — 명암을 통한 형태 지각과 외부 광원 단서
  16. Journal of Vision·PMC — 위쪽 광원 가정의 한계

이미지와 출처

WATCH THE STORY

함께 보는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