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영상으로 먼저 만나기
영상에서는 젊은 날의 탕자에서 말년의 재회로 이어지는 렘브란트의 여정을 만납니다. 아래 글은 화면의 작은 차이들과 그림이 완성된 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두 작품 전체 보기
두 작품을 원래 비율 그대로 실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큰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술집의 탕자》 · 1635년경

전체 이미지 크게 보기 ↗
《돌아온 탕자》 · 1668년경

전체 이미지 크게 보기 ↗
성서 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eBible.org가 Public Domain으로 제공하는 한국어 성경 본문입니다. 제공처 판본 표기는 ‘The Holy Bible in Korean, 1910 translation’입니다. 절 번호를 붙이고 문단을 나누었으며, 본문의 옛 표현과 표기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판본·이용 조건
집을 떠난 작은아들 · 11–16절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다 · 17–19절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맞다 · 20–24절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형과 아버지의 대화 · 25–32절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01 손바닥만 한 판화에서 벽을 채우는 그림으로
영상에 잠깐 등장한 1636년 판화를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이 작은 종이 속에서는 집이 꽤 분주합니다. 아버지는 한쪽 발을 내밀며 허리를 깊이 굽히고, 아들은 옆얼굴을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문 안에는 옷을 든 인물이 보이고, 창문에서도 누군가 고개를 내밉니다. 돌아온 사람의 소식이 집 안으로 번지는 듯한 모습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이 판본의 판 크기는 15.6 × 13.8cm입니다. 한 손을 펴면 가릴 수 있을 정도의 화면입니다. 에칭은 산으로 금속판에 선을 파고 그 자리에 잉크를 채워 종이에 찍는 방식이므로, 같은 구도를 여러 인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아래쪽에는 렘브란트의 이름과 ‘1636’이라는 연도도 새겨져 있습니다. [2]
약 30여 년 뒤의 유화는 높이 262cm입니다. 판화의 판 높이와 비교하면 약 열일곱 배입니다. 작은 종이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선을 읽던 장면이 사람보다 큰 화면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그런데 커진 그림에서 인물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잦아듭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동작과 바삐 움직이는 발 대신, 오래 멈추어 있는 몸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1]
02 두 벌의 붉은 옷 사이에 남겨둔 거리
전체 그림에서 아버지와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의 옷을 함께 보세요. 둘 다 붉은 기운을 띱니다. 시선이 가장 밝은 포옹에 머물렀다가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화면 양쪽에 색의 짝이 놓인 듯합니다. 두 사람의 손을 비교하면 그 사이의 차이도 선명해집니다.


아버지의 두 손은 아들의 몸 위로 펼쳐져 있습니다. 오른쪽 남자의 손은 자기 몸 앞에 모여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몸을 숙여 상대와 닿아 있고, 다른 사람은 수직으로 선 채 사이의 거리를 남겨둡니다. 표정만 확대하면 놓치기 쉬운 차이입니다. 손과 팔, 두 사람 사이의 어둠까지 함께 보아야 관계의 모양이 드러납니다.
오른쪽 남자는 흔히 형으로 읽힙니다. 그림 속 인물의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보아도 흥미롭습니다. 눈앞의 재회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포옹은 두 사람만의 일이었던 순간을 벗어납니다. 누군가는 이미 품 안에 들어갔고, 누군가는 아직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뒤의 어두운 얼굴들도 살펴보세요. 화면을 채운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인지 렘브란트는 말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빛을 받는 정도와 몸의 방향만 조금씩 다릅니다. 관람자는 그 작은 차이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두 손에서 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아들의 등에 놓인 두 손을 가까이 보면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차이를 보고, 한 인물의 두 손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읽었습니다. 자신의 책 《돌아온 탕자》에서 자세히 풀어낸 해석입니다. [6]

손 부분 크게 보기 ↗
나우웬이 아버지의 손으로 읽은 쪽은 화면 오른쪽 손, 곧 인물 자신의 왼손입니다. 손가락이 넓게 벌어져 있고 아들의 어깨와 등을 힘 있게 받치는 듯합니다. 그는 여기에서 아들을 붙들고 지켜주는 힘을 보았습니다. [6]
어머니의 손으로 읽은 쪽은 화면 왼쪽 손, 곧 인물 자신의 오른손입니다. 손가락들이 비교적 가지런히 모여 있고 등에 부드럽게 얹혀 있습니다. 나우웬에게 이 손은 지친 아들을 어루만지고 달래는 손이었습니다. [6]
그가 말하려는 뜻은 이렇습니다. 돌아온 아들에게는 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줄 사람도, 고생했다며 등을 쓸어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나우웬은 두 손의 서로 다른 모양에서 그 두 가지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협회가 공개한 그의 육성 기록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이 함께 아들을 만진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7]
03 성경은 형이 잔치에 들어갔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누가복음 15장 25–32절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안아주는 장면 뒤로도 이어집니다. 들에서 돌아온 형은 음악 소리를 듣고, 동생을 위한 잔치가 열렸다는 말을 전해 듣습니다. 화가 난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형을 달랩니다. [3]
아버지는 두 번 몸을 움직입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올 때에는 그를 맞으러 나가고, 큰아들이 밖에 머물 때에는 다시 그쪽으로 나갑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차례로 다가가는 모습을 이 대목에서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에 아버지는 형에게 늘 함께 있었다는 것과 돌아온 동생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성경의 서술은 거기서 끝납니다. 형이 고개를 끄덕였는지, 잔치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장면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3]
그 결말을 떠올리고 그림을 보면 오른쪽의 간격이 새삼 눈에 걸립니다. 한 번의 포옹이 이루어진 뒤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의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도 어느 날은 무릎 꿇은 아들에게, 다른 날은 떨어져 선 인물에게 더 가까운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04 암스테르담의 그림이 러시아 황제의 수집품이 되기까지

이 그림이 에르미타주에 들어간 해는 1766년입니다.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난 1669년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입니다. 작품이 러시아 황제의 수집품이 된 것은 화가 사후의 일입니다. 제작 이후에도 그림의 긴 삶은 이어집니다. [1]
에르미타주 재단 영국 지부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 드미트리 골리친이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이 그림을 구입했습니다. 오늘의 관람자가 만나는 조용한 재회 뒤에는 대사와 수집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거래가 있었습니다. [4]
미술관의 작품 설명에서 제작 연도와 입수 연도를 나란히 읽어보면 재미있습니다. ‘1668년경’은 화가가 작업한 시간이고, ‘1766년’은 이 그림이 다른 수집의 역사에 들어간 시간입니다. 두 숫자 사이에는 작가가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었던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그림 앞에서 보게 되는 것은 한 화가의 마지막 시기와, 그 뒤로 사람들이 이 작품을 선택하고 간직해온 시간입니다. 한 점의 캔버스가 오래 살아남는 데에는 붓을 든 손 이후의 손들도 필요합니다.
05 나우웬은 왜 이 그림을 보고 책을 썼을까
네덜란드 출신의 사제이자 작가 헨리 나우웬은 1983년 프랑스의 라르슈 공동체에서 이 그림의 복제본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6주 동안 강연을 마치고 쉬러 간 때였습니다. 그는 그림에 마음이 끌려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92년 《돌아온 탕자》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5]

Penguin Random House · 책 소개와 판본 정보 ↗
나우웬은 그림 속 세 사람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읽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은아들에게서, 다른 사람이 받는 사랑을 보며 서운해하는 마음은 형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두 아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던 그는, 아버지의 역할에도 주목했습니다. [5]
그의 생각을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을 기다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림 속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맞아주듯,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입니다. [5]
렘브란트가 그린 장면은 돌아온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나우웬은 그 장면을 보면서 자기 삶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은가’에 이어 ‘나는 누구를 위로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입니다. 한 장의 복제 그림에서 시작된 책이 오래 읽히는 이유도 이런 질문에 있을 것입니다.
자료와 이미지 출처
제작·소장 정보는 미술관 기록을, 나우웬의 독해는 협회 소개를 따랐습니다. 인물 사이의 거리와 손의 자세에 관한 문단은 작품 이미지를 보며 읽은 감상입니다.
- 에르미타주 미술관 작품 기록 — 1668년경, 262 × 205cm, 1766년 입수, 소장 번호 ГЭ-742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1636년 에칭의 재료·크기와 공개 도메인 이미지
- 누가복음 15장 11–32절 — 돌아온 탕자의 비유. 재회 20–24절, 형과 아버지의 대화 25–32절 · eBible.org 한국어 성경(The Holy Bible in Korean, 1910 translation) · Public Domain / 판본·이용 조건
- Hermitage Foundation UK, Geraldine Norman의 작품 소개 — 1766년 파리에서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구매한 드미트리 골리친
- Henri Nouwen Society,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1983년 복제 그림과의 만남, 세 인물에 대한 독해, 1992년 책 출간
- 헨리 나우웬,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The Father Welcomes Home」 중 「Father and Mother」 — 두 손에 관한 해석
- Henri Nouwen Society, Meditations on the Prodigal Son — 나우웬 육성 기록과 대본
이미지별 원출처와 이용 조건은 각 그림 아래에 표시했습니다. 자료 확인: 2026년 10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