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 영상 보기 →

책 밖의 이야기 · 앤서니 버클리
ANTHONY BERKELEY · 024

초콜릿 사건의 작가가
히치콕 영화 뒤에도?

하나의 사건, 여섯 개의 추리
앤서니 버클리와 《독이 든 초콜릿 사건》

이름을 바꾸고, 이야기를 바꾸고.
책장 너머에서 만나는 뜻밖의 버클리.

ANTHONY BERKELEY · FRANCIS ILES · A. B. COX
1911년 앤서니 버클리의 실제 사진
1911년 셔본 스쿨 시절의 앤서니 버클리 콕스.촬영자 미상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행간소설 024작가 사진 · 책 표지 · 영화 자료범인과 결말은 밝히지 않습니다

00 영상으로 먼저 만나기

영상에서는 초콜릿 한 상자를 두고 여섯 사람이 벌이는 추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쓴 작가의 다른 책과, 영화로 이어진 사연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01 작가 이름도 수수께끼였던 데뷔작

탐정소설 표지를 펼쳤는데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없다면 어떨까요. 버클리의 첫 추리소설 《레이턴 코트의 수수께끼》(1925)는 처음에 익명으로 나왔습니다. 다음 작품 《위치퍼드 독살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탐정 로저 셰링엄은 독자를 만나고 있었지만, 그를 만든 작가는 이름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1]

1911년 셔본 스쿨 시절의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11년 셔본 스쿨 시절의 앤서니 버클리 콕스.촬영자 미상 · 출처 · Public domain (Commons)

위 사진은 1911년, 셔본 스쿨에 다니던 버클리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팔짱을 낀 청년이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나중에 탐정의 확신을 뒤흔들 소설을 쓰게 되는 사람의 실제 얼굴입니다. [2]

책에 쓰인 이름을 따라가면 조금 더 헷갈립니다. 앤서니 버클리, 프랜시스 아일스, A. B. 콕스.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이름이 달라지면 책에서 벌어지는 일도 꽤 달라집니다. [1] [3]

02 초콜릿 사건을 쓰기 전, 고양이 소설도 썼다

1926년, A. B. 콕스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The Professor on Paws》. 우리말로 풀면 ‘네 발로 걷는 교수’쯤 됩니다. 사람의 뇌를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에게 옮기는 실험이 등장합니다. [3]

설정만 들으면 고양이가 된 사람이 집 안을 누비는 소동극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더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고양이 몸속에 들어간 인간의 지성이 점점 흐려지는 것입니다. SF 백과사전은 이 변화를 작품의 특징으로 소개합니다. [3]

1926년, 그의 책장에는 두 종류의 이야기가 있었다

한쪽에는 독살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이 있고, 다른 쪽에는 고양이 몸에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이 나오기 3년 전의 일입니다.

‘추리소설의 규칙을 흔든 작가’라는 설명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책이지요. 버클리는 독자를 놀라게 할 방법을 엉뚱한 곳에서도 찾고 있었습니다. 초콜릿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 한 마리를 소설 속에 들여놓았던 셈입니다.

03 다른 이름으로는, 살인을 생각하는 사람 곁에 앉았다

1931년에 나온 《Malice Aforethought》의 작가 이름은 프랜시스 아일스입니다. 제목은 ‘미리 품은 악의’ 정도로 풀 수 있습니다. [5]

프랜시스 아일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Malice Aforethought》. 사진은 2020년판 표지.
프랜시스 아일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Malice Aforethought》. 사진은 2020년판 표지.Orion / Hachette UK · 출처 · Copyright · 작품 소개용 축소 표지

표지를 보면 한적한 마을길과 길게 드리운 사람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이름 아래에는 고전 범죄소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는 의사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소개부터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4]

읽는 사람은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지켜보게 됩니다. 살인할 마음을 가진 사람이 평소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을 보내는 동안, 독자는 그 속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대화도 편하게 듣기 어려워집니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에서는 추리를 발표하는 사람의 말을 따라갔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범죄를 생각하는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됩니다. 같은 작가가 독자의 자리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04 히치콕은 우유잔 안에 조명을 넣었다

프랜시스 아일스의 또 다른 소설 《Before the Fact》(1932)는 히치콕의 영화 《Suspicion》(1941)으로 이어집니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의 작가가 히치콕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했습니다. [1]

히치콕의 영화 《Suspicion》, 1941년 미국 포스터.
히치콕의 영화 《Suspicion》, 1941년 미국 포스터.William Rose / RKO Radio Pictures · 출처 · Public domain (Commons)

케리 그랜트와 조앤 폰테인이 부부로 등장합니다. 아내는 매력적인 남편을 점점 의심하게 됩니다. 남편이 자신을 해치려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 불안을 따라갑니다. [6]

그중 유명한 장면이 남편이 우유 한 잔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순간입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우유만 유난히 환하게 보입니다. 어떻게 찍었을까요?

히치콕은 훗날 프랑수아 트뤼포와의 인터뷰에서 우유 안에 조명을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잔을 든 사람의 얼굴보다 새하얀 우유에 눈이 먼저 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7]

《Suspicion》 극장 홍보용 로비 카드, 1941년. 케리 그랜트와 조앤 폰테인.
《Suspicion》 극장 홍보용 로비 카드, 1941년. 케리 그랜트와 조앤 폰테인.RKO Pictures · 출처 · Public domain (Commons)

초콜릿도 우유도 평소에는 반가운 먹을거리입니다. 그런데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한번 생기면, 보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버클리의 책에서 만난 의심이 영화에서는 우유 한 잔에 모입니다.

05 이번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부터 맞혀야 한다

버클리의 다른 책 《Murder in the Basement》(1932)에는 지하실에서 시신을 발견한 신혼부부가 나옵니다. 수사에는 먼저 넘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1]

이후 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완성 소설 원고가 등장하고, 독자는 그 안의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 누가 앞에서 발견된 희생자인지 생각하며 읽게 됩니다. 범인의 이름을 찾기 전에 희생자의 이름부터 궁금해지는 구성입니다. [1]

책마다 독자에게 맡기는 일이 달랐습니다. 여섯 사람의 추리를 비교하기도 하고, 살인을 생각하는 사람의 일상을 지켜보기도 하고, 죽은 사람의 정체부터 찾아보기도 합니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이 재미있었다면, 다음에는 표지에서 프랜시스 아일스라는 이름을 찾아보세요. 이미 만났던 작가가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료와 이미지 출처

  1. 마틴 에드워즈 — 초기 두 작품의 익명 출간, 두 필명, 《Murder in the Basement》의 구성
  2. 1911년 버클리 사진 — 셔본 스쿨 시절, 사진 정보 및 이용 조건
  3.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 John Clute — A. B. Cox와 《The Professor on Paws》(1926)
  4. Hachette UK — 《Malice Aforethought》 작품 소개와 2020년판 표지
  5. Open British National Bibliography — 《Malice Aforethought》의 1931년 초판 기록
  6. 영국영화협회 BFI — 《Suspicion》(1941)의 줄거리와 출연진
  7. Jeff Dolven, 「I Put a Light in the Milk」 — 히치콕·트뤼포 인터뷰에 등장하는 우유잔 조명

사진과 영화 홍보물은 각 이미지의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현대판 책 표지는 해당 작품을 소개하는 축소 이미지로 실었습니다. 자료 확인: 2026년 10월 29일.

#앤서니버클리 #독이든초콜릿사건 #로저셰링엄 #크라임서클 #디텍션클럽 #애거서크리스티 #도러시세이어스 #요네자와호노부 #바보의엔드크레디트 #고전추리소설 #영국추리소설 #추리소설황금기 #탐정소설 #추리소설 #미스터리 #문학 #행간소설 #요네자와 #호노부 #빙과 #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