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영상으로 먼저 만나기
영상에서 세이어스와 탐정 피터 윔지를 먼저 만나보세요. 아래에는 영상에 담지 못한 일화들을 모았습니다.
01 등장인물 이름을 묘지에서 찾았다고?
소설을 쓰려면 주인공부터 이웃 주민까지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세이어스에게는 꽤 뜻밖의 참고 자료가 있었습니다. 동네 교회의 묘비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제로 일하던 영국 블런티셤에서 자랐습니다. 모교인 서머빌 칼리지의 소개에 따르면, 나중에 소설 속 몇몇 인물의 이름을 이곳 교회 묘비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추리소설가의 이름 수첩에 묘비의 이름이 들어간 셈이죠. [1]

사진을 보면 교회 바로 옆에 묘비들이 모여 있습니다. 세이어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풍경이었겠지요. 소설에 쓸 이름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학창 시절의 장소도 작품에 등장합니다. 《가우디 나이트》에 나오는 슈루즈베리 칼리지는 가상의 대학인데, 세이어스가 다닌 서머빌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대학 안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면, 작가가 잘 아는 장소를 그려 넣은 덕분일 겁니다. [1]

02 맥주 7잔을 2잔으로 줄인 이유
아래 광고를 보세요. 큰부리새들이 맥주잔을 올려놓고 날아갑니다. 저렇게 긴 부리에 맥주까지 얹다니, 보기만 해도 조금 아슬아슬합니다.

기네스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 광고에 쓰려던 새는 펠리컨이었습니다. 부리 위에는 일주일치라는 뜻으로 맥주 7잔을 올려놓았고요. 세이어스는 새를 큰부리새로 바꾸고 맥주도 2잔으로 줄였습니다. [2]
왜 하필 2잔이었을까요? 영어로 큰부리새는 toucan, ‘투캔’이라고 합니다. ‘둘이 할 수 있다’는 two can도 ‘투캔’처럼 들립니다. 세이어스는 광고 문구에서 이 비슷한 소리를 이용했습니다. 새 이름을 말하면 숫자 2도 함께 떠오르고, 그림을 보면 실제로 맥주가 2잔 있는 것이죠. [2]
한국어로 옮기면 농담이 잘 살아나지 않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새 이름과 맥주 2잔을 말장난으로 연결한 광고입니다. 이제 포스터를 다시 보면, 부리 위의 잔이 왜 짝을 이루는지 눈에 들어옵니다.
03 소설을 읽은 종지기들이 편지를 보냈다
《나인 테일러스》(1934)가 나오자 종을 울리는 일을 하는 독자들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종 울리는 방법이 틀렸다며 오류 목록을 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3]
영국에는 여러 사람이 종을 하나씩 맡아 함께 울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각자 줄을 당기되, 종이 울리는 순서를 계속 바꿉니다. 자기 차례를 정확히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맞춰야 하니, 여럿이 하는 연주에 가깝습니다.

소설에서는 이 사람들이 무려 9시간 동안 종을 울립니다. 세이어스는 중간에 다른 사람이 교대해 주는 것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인정받는 긴 타종에서는 한 사람이 자기 종을 끝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실제 종지기들이 읽다가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던 겁니다. [3]
그래도 이 책을 향한 애정은 오래갔습니다. 출간 70주년인 2004년에는 성이 테일러인 종지기 9명이 모여 기념 타종을 했습니다. 제목의 ‘나인 테일러스’에 맞춰 사람까지 구한 것이죠. 이들은 약 3시간 동안 종을 울리는 순서를 5,088차례 바꾸며 책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팬들도 작가 못지않게 꼼꼼하고 별났습니다. [3]
04 신혼여행을 갔는데, 지하실에 시체가
탐정 피터 윔지와 추리소설가 해리엇 베인이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조용한 시골에서 신혼여행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런데 집 지하실에서 이전 주인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신혼부부가 짐을 풀자마자 살인사건이 끼어드는 이야기, 《버스맨스 허니문》입니다. [7]

이 작품에는 출간 순서부터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연극이 1936년 12월, 소설은 1937년에 나왔습니다. 소설을 읽고 극장에 간 관객보다, 연극을 먼저 보고 책을 기다린 관객이 있었던 겁니다. [4] [6]
무대로 윔지를 불러낸 사람은 세이어스의 친구 뮤리얼 세인트클레어 번이었습니다. 같은 서머빌 출신인 번이 함께 연극을 쓰자고 권했고, 두 사람이 대본을 완성했습니다. 세이어스는 《가우디 나이트》로 윔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친구의 제안 덕분에 그의 신혼여행까지 쓰게 됐습니다. [1] [4]
05 추리소설가도 스포일러는 싫었다
세이어스는 단테를 칭찬하고, 그의 작품 구절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작 자신도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5]
집에는 물려받은 《신곡》 3권이 있었습니다. 책 상태가 재미있습니다. 첫 권 《지옥편》은 제본이 헐거웠고, 둘째 권 《연옥편》은 멀쩡했으며, 마지막 《천국편》은 거의 새 책 같았습니다. 앞부분만 열심히 읽고 뒷권은 책장에 꽂아 둔 흔적처럼 보이지 않나요? 세이어스도 그 차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5]

1944년, 그녀는 공습을 피해 들어간 방공호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탈리아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번갈아 보며 《지옥편》을 5일 만에 끝냈습니다. 예상 밖으로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내용이 미리 나올까 봐 각 장 앞의 줄거리 요약도 피했다고 합니다. 추리소설가가 14세기 시인의 이야기 솜씨에 푹 빠진 겁니다. [5]
그 독서는 나중에 직접 번역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세이어스는 《지옥편》과 《연옥편》을 번역했고, 마지막 《천국편》을 작업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번역은 친구 바버라 레이놀즈가 완성했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던 낡은 고전이, 그녀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일이 되었습니다. [4] [6]

자료와 이미지 출처
- 서머빌 칼리지 — 묘비에서 빌려온 인물 이름, 모교와 소설, 친구와 쓴 연극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 펠리컨이 큰부리새로 바뀐 광고 이야기
- 웨이드 센터 — 종지기들의 편지와 2004년 기념행사
- 세이어스 협회 — 1936년 연극 공연과 단테 번역
- 세이어스가 찰스 윌리엄스에게 보낸 1944년 8월 16~17일 편지
- 세이어스 협회 — 작품 발표 연도
- Hodder & Stoughton — 《버스맨스 허니문》 줄거리와 표지
사진과 그림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출처와 이용 조건은 각 이미지 아래에 표시했습니다. 자료 확인: 2026년 10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