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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뒷이야기 / 코난 도일과 해리 후디니 · 020
DOYLE & HOUDINI · 020

내 마술을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 친구.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도일과 마술사 후디니는 왜 갈라섰을까?
공룡이 움직이는 필름에서 영매의 방까지,
서로를 설득하려던 두 사람의 뜻밖의 장면들.

아서 코난 도일의 초상
아서 코난 도일 · 1914
원본·출처 · Public domain
해리 후디니의 초상
해리 후디니 · 1915
LaPine Studios · 출처 · Public domain
편지와 시연, 공개 논쟁을 따라가는 이야기사진·포스터의 출처는 각 도판 아래에

00 영상으로 먼저 만나기

영상에서는 요정 사진과 두 친구의 결별을 따라갑니다. 글에서는 마술사들의 연회에 나타난 공룡, 후디니가 준비한 석판, 영매를 찾아간 여성 탐정의 이야기를 더 들여다봅니다.

01 마술사들의 연회에 공룡이 나타났다

1922년, 미국 마술사들의 모임에 코난 도일이 초대됐습니다. 그를 부른 사람은 후디니였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던 작가가 속임수의 전문가들 앞에 서는 자리였습니다. 도일은 자신의 믿음이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날 그가 꺼낸 것은 강령회의 증언보다 훨씬 뜻밖의 물건이었습니다. 움직이는 공룡이 담긴 필름이었습니다. [1]

조명을 낮추고 영상을 틀자 화면 속에서 선사시대의 생물들이 움직였습니다. 도일은 그 자리에서 제작 비법을 풀어놓지 않았습니다. 맥길대학교의 일화 소개는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을 성급히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도일의 도전으로 설명합니다. [1]

《잃어버린 세계》의 1925년 영화 포스터. 도일이 1922년 마술사 모임에서 보여준 것은 영화 제작 과정의 시험 영상이었다.
《잃어버린 세계》의 1925년 영화 포스터. 도일이 1922년 마술사 모임에서 보여준 것은 영화 제작 과정의 시험 영상이었다.First National Pictures · 원본·이용 조건 · Public domain

공룡을 움직인 사람은 특수효과 제작자 윌리스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 작은 모형을 조금 움직이고 한 프레임을 찍은 뒤 다시 움직이는 스톱모션 기법입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화 해설은 도일이 오브라이언의 시험 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작업은 1925년 영화 《잃어버린 세계》로 이어졌고, 오브라이언은 훗날 《킹콩》의 효과도 맡았습니다. [2]

이 장면은 두 사람을 쉽게 분류하려는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도일은 정교하게 만든 환상을 관객 앞에 내놓을 줄 알았습니다. 후디니는 그런 환상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둘 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놀라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놀란 다음에 시작됐습니다. 방금 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02 후디니의 집에서는 석판이 글을 썼다

같은 해, 후디니는 뉴욕의 집에서 도일에게 별도의 시연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불가능한 장면’을 준비할 차례였습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전하는 일화에는 방 안에 매단 석판, 작은 코르크 공, 흰 잉크가 등장합니다. 도일은 공 하나를 잘라 장치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공을 잉크에 담갔습니다. [3]

후디니는 손님에게 집 밖으로 나가 원하는 문장을 종이에 적고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도일이 선택한 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었습니다. 성서에서 벽에 나타나는 수수께끼 같은 글귀를, 마술사가 준비한 석판 앞에서 택한 것입니다.

이어 잉크 묻은 공이 석판 위를 움직이며 그 문장을 써냈다고 합니다. 손님이 따로 적어 온 문장이 눈앞에서 재현된 셈입니다. 후디니는 이 결과를 오랜 연구와 속임수로 만들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도일은 이후에도 후디니의 능력에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

도일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에서 새로운 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후디니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원인을 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후디니에게는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술이 훌륭할수록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워집니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 놀라움이 자신이 전하려던 설명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비밀을 모두 공개하면 공연의 재산을 잃고, 공개하지 않으면 초능력을 숨긴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이 우정에는 마술사의 직업 자체가 만들어낸 함정도 있었습니다.

03 영매에게 가는 소개장을 써준 친구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공개 토론의 대결 구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20년 무렵 편지가 오갔고, 관계가 가까워진 뒤 도일은 영국을 방문한 후디니에게 여러 영매를 소개했습니다. PBS의 전기 자료에 따르면 후디니는 그 소개 덕분에 많은 영매를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4]

해리 후디니, 1915년. LaPine Studios의 초상.
해리 후디니, 1915년. LaPine Studios의 초상.LaPine Studios · 원본·이용 조건 · Public domain

소개장을 써준 도일에게는 친구가 자신이 신뢰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후디니에게는 현상을 직접 확인할 기회였습니다. 같은 방문 일정이 서로 다른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동안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와, 나중에 관계가 아플 만큼 벌어진 이유를 함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기록을 보관하는 해리 랜섬 센터의 후디니 컬렉션 안내에는 공연 사업, 사진, 스크랩북, 편지와 각종 연구 자료가 나란히 나옵니다. 무대에서 자물쇠를 푸는 사람에게는 무대 밖에서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생활도 있었습니다. [5] 유명인의 확신을 듣는 것과 그 확신이 생긴 현장을 직접 살피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친구가 정성껏 소개한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서 ‘납득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쪽도 증거에 대한 평가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현상에 관한 질문이었을 대화에,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문제가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04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보는 사람

1922년 6월 애틀랜틱시티에서 도일의 아내 진은 자동기술로 후디니의 어머니에게서 온 메시지라고 여긴 글을 써냈습니다. 자동기술은 자신의 손이 영혼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으며 글을 적는 방식입니다. 후디니에게 이것은 학술적인 주장만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5]

영상에서 다룬 영어와 십자가의 문제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후디니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쓰던 언어와 신앙을 기준으로 메시지를 판단했습니다. PBS가 정리한 경위에 따르면 그는 자리에서 곧바로 자신의 판단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4] 긴 글이 나왔다는 사실과, 그 글이 정말 그 사람에게서 왔다는 판단은 따로 남았습니다.

가족의 편지를 읽을 때 우리는 정보만 확인하지 않습니다. 평소 쓰던 말, 나를 부르는 호칭, 그 사람이 꼭 물었을 안부를 함께 읽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도일 부부와, 어머니의 흔적을 알아보려는 후디니는 같은 종이를 두고도 서로 다른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단 한 번의 말다툼으로 끝난 결별로 기억하면 뒤의 시간이 사라집니다. 개인적인 논쟁은 이어졌고, 1923년 봄에는 두 사람이 신문에 날카로운 편지를 주고받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4] 편지를 쓰는 상대는 여전히 친구였지만, 읽는 사람은 이제 둘만이 아니었습니다.

05 과학 잡지가 유령에게 상금을 걸다

그 무렵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심령 현상을 검증하는 공개 시험을 추진했습니다. 이 잡지가 훗날 정리한 이력에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나옵니다. 도일이 발행인 오슨 먼에게 심령 연구에 대해 잡지가 분명한 입장을 취하라고 제안했고, 잡지는 위원회를 꾸려 시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위원 중에는 후디니도 있었습니다. [6]

영혼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작가가 행동을 촉구한 자리에서, 친구인 마술사가 검증자로 등장합니다. 상금이 걸리고 시험 조건이 정해지자 질문도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일어나야 성공으로 인정할 것인가. 관찰자는 어디에 앉을 것인가. 물건이 움직이는 동안 손발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 중심으로 들어온 인물이 보스턴의 미나 크랜던, ‘마저리’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종이 울리고, 죽은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현상이 조사 대상이 됐습니다. 잡지의 회고는 위원회가 많은 강령회를 관찰한 뒤 1925년 마저리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전합니다. [6]

이때부터 논쟁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친구끼리의 불일치에는 대화를 미룰 여지가 있지만, 공개 시험에는 보고서와 결론을 요구하는 독자가 있습니다. 한쪽은 부당하게 의심받는 영매를 변호하고, 다른 쪽은 통과시킬 수 없는 시험이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위원회와 같은 사건이 두 사람의 간격을 더 넓혔습니다.

06 1925년 신문 제목에 나란히 놓인 두 이름

미국 의회도서관에는 1925년 1월 26일자 《보스턴 헤럴드》의 기사가 남아 있습니다. 목록에 적힌 제목은 도일이 마저리를 진짜라고 옹호하며 후디니를 비난한다는 내용입니다. 도서관의 자료 설명은 도일이 신문에 보낸 긴 성명에서 마저리를 변호하고, 후디니의 조사 방식을 공격했다고 정리합니다. [7]

신문 기사 한 건을 앞에 놓으면 결별이 추상적인 성격 차이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뀝니다. 도일은 자신의 판단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후디니의 이름은 이제 그 글에서 반박해야 할 상대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한때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던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상대의 판단을 흔들게 된 것입니다.

도일의 성명은 마저리가 실제로 초능력을 가졌다는 증명으로 읽을 자료가 아닙니다. 도일이 무엇을 옹호했고 누구를 비판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당시 신문을 펼치는 재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결론을 뒤에서 들려주는 대신, 논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사람들의 입장을 그 날짜에 붙잡아 둡니다.

이제 질문은 ‘영혼을 믿는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친구의 아내가 전했다는 메시지, 친구가 소개한 영매, 공개적으로 옹호한 인물의 신뢰성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어느 한 사건에서 판단을 바꾸는 일이 이전의 여러 판단을 다시 살피는 일로 커져 있었습니다.

07 후디니 뒤에는 변장한 여성 탐정이 있었다

로즈 매켄버그의 여러 변장 모습, 1929년 간행물 도판. 강령회 잠입 조사에 사용한 인물 유형들을 보여준다.
로즈 매켄버그의 여러 변장 모습, 1929년 간행물 도판. 강령회 잠입 조사에 사용한 인물 유형들을 보여준다.Rose Mackenberg · 원본·이용 조건 · Public domain (미국)

후디니의 영매 조사에는 뜻밖의 조연이 있습니다. 뉴욕의 사립탐정 로즈 매켄버그입니다. 웰컴 컬렉션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조사할 지역의 손님들을 관찰하고, 그곳에 어울리는 이름과 인물을 만들어 강령회에 들어갔습니다. 슬픔에 잠긴 미망인은 그가 자주 맡았던 역할이었습니다. [8]

한 사례에서 매켄버그는 가상의 죽은 남편을 만들어 영매 허먼 E. 파커를 찾아갔습니다. 영매는 그 남편과 접촉했다고 했습니다. 매켄버그가 사망 보상금 3,000달러를 받을지 고민하는 척하자, 상담은 돈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영매는 그중 1,000달러를 자신과 공범이 세운 회사에 투자하도록 권했습니다. 매켄버그는 증거를 모아 전달했고, 두 사람은 사기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웰컴의 해설은 전합니다. [8]

존재하지 않는 남편이 투자 조언을 해오는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서늘합니다. 영매가 무슨 방법으로 종을 울렸는지 몰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돈은 어디로 들어가는가. 매켄버그의 조사에서는 무대 장치와 함께 거래의 흐름도 중요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의 외모가 여러 손님으로 바뀝니다. 후디니가 무대 위에서 관객의 시선을 붙들었다면, 조사원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손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영매를 비판하는 공개 발언 뒤에는 이렇게 이름과 옷차림을 바꾸고 현장을 다닌 사람의 노동이 있었습니다.

08 같은 수수께끼에서 다른 길로

두 사람이 갈라선 이유를 믿음과 불신이라는 두 단어로 정리하면 깔끔합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공룡 영상, 석판, 소개장, 어머니의 메시지, 신문 기사를 함께 놓으면 좀 더 인간적인 풍경이 보입니다. 서로를 설득하려던 시도가 때로는 상대의 확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후디니가 정교한 마술을 보여주면 도일은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도일이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하면 후디니는 그 사람도 시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쪽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설명이 다른 쪽에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마술 자료 목록에는 두 사람의 편지 사본과 진 도일의 자동기술 메시지, 강령회 관련 메모가 같은 묶음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9] 유명인의 우정이 깨진 뒤 남은 것이 거창한 선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쓰고, 접고, 건네고, 보관한 종이들이 그 관계의 모양을 전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은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둘은 함께 놀랄 수 있었고, 편지를 쓸 수 있었고, 친구를 위해 사람을 소개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가까웠기에 상대의 판단을 그냥 남의 의견으로 놓아두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도일의 공룡과 후디니의 석판을 다시 떠올려 보세요. 둘 다 눈앞에 놀라운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그 장면을 가리키며 친구가 자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랐습니다. 우정이 풀리지 않은 매듭이 된 곳은 아마도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자료와 이미지 출처

  1. McGill University, Joe Schwarcz — 도일이 마술사들에게 보여준 공룡 영상
  2. 미국 의회도서관, Brian Taves — The Lost World와 윌리스 오브라이언
  3. Scientific American, Michael Shermer — 후디니의 석판 시연
  4. PBS American Experience — 도일과 후디니의 우정과 공개 논쟁
  5. Harry Ransom Center — 해리 후디니 문서 컬렉션 안내
  6. Scientific American — 심령 현상 상금과 마저리 조사
  7. 미국 의회도서관 — Boston Herald, 1925년 1월 26일 도일의 마저리 옹호 기사
  8. Wellcome Collection, A R Hopwood — 로즈 매켄버그의 잠입 조사
  9. 미국 의회도서관 — 마술 관련 신문·서신 컬렉션 목록, 도일–후디니 파일

시연 일화는 각 기관과 연구자의 서술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물들의 마음과 관계를 읽는 부분은 글의 해석이며, 영매가 전했다는 메시지는 당시의 주장으로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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