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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뒷이야기 / 작가들의 비밀 모임행간소설 · 열여섯 번째 이야기
THE DETECTION CLUB · 016

해골 앞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맹세했을까.

1930년, 추리작가들이 모인 식탁.
기묘한 입회식과 유쾌한 공동 집필.
그들이 독자에게 건넨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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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텍션 클럽 모임, 1932년. 체스터턴이 회장이던 시기.
디텍션 클럽 모임, 1932년. 체스터턴이 회장이던 시기.출처: en.wikipedia.org · 출처
앤서니 버클리 · 크리스티 · 세이어스결성 · 1930년범인과 핵심 반전은 밝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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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들의 비밀 모임 — Detection Club

영상으로 작가들의 모임을 만나고, 아래에서 인물과 의식, 공동 집필의 이야기를 이어 읽어보세요.

그들은 책 속에서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식탁에서는 그 사건을 만드는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01혼자 쓰는 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이다

소설 속에서는 탐정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디텍션 클럽에서는 그 탐정을 만든 작가들이 모였습니다. 책상 앞에서 범행의 시간과 단서의 순서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서로의 동료가 되어 마주 앉은 것입니다.

모임을 이끈 인물은 앤서니 버클리였습니다. 동료 작가들의 식사 모임을 바탕으로 1930년 디텍션 클럽이 결성됐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등이 초기 회원으로 참여했습니다.[1][2]

앤서니 버클리, 1911년.
앤서니 버클리, 1911년.Unknown author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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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의 출발을 이해하는 열쇠는 ‘비밀’만이 아니라 ‘동료’라는 말에 있습니다. 같은 장르를 쓰는 사람은 때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작업 중의 고민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독자가 어느 대목에서 의심할지, 설명을 얼마나 해야 지나치지 않을지 같은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클럽의 역사를 정리한 작가 마틴 에드워즈도 모임의 기본 성격을 사교와 식사에 두고 설명합니다.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는 회원들이 각자 집필에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를 도왔고, 공동 작품에도 참여했다고 소개합니다.[1][2] 혼자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식 사이에, 하나의 식탁이 놓인 셈입니다.

02하나의 클럽, 서로 다른 탐정들

회원들이 같은 원고를 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온 작가들이 모였다는 점이 클럽의 흥미를 더합니다. 세이어스, 크로프츠, 크리스티 같은 이름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추리소설의 황금기는 한 사람의 성공담을 넘어 여러 작가가 함께 이루던 장면으로 보입니다.[2]

도로시 L. 세이어스. 1925년 미국 출판사의 홍보 사진.
도로시 L. 세이어스. 1925년 미국 출판사의 홍보 사진.uncredited; published by Boni and Liveright in connexion with her 1925 release Whose Body · Public domain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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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출처: en.wikipedia.org · 출처

초대 회장은 《브라운 신부》로 알려진 G. K. 체스터턴이었습니다. 이후 세이어스와 크리스티도 회장직을 맡았습니다.[1] 누가 모임을 이끄는지 살펴보는 일은 추리소설의 역사를 작품 제목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로 읽는 방법이 됩니다.

G. K. 체스터턴.
G. K. 체스터턴.출처: en.wikipedia.org · 출처

이들은 공통의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이 모든 작품을 같은 모양으로 만들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공정한 단서를 제시한다는 약속 안에서도 인물의 말투, 사건의 속도, 독자가 주목하게 만드는 대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푸는 사람들의 만남이었기에, 서로 배울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03해골 에릭 앞에서 하는 맹세

디텍션 클럽의 입회식에는 해골이 등장합니다. 이름은 에릭. 회원 케이트 찰스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촛불 아래에서 새 회원들이 해골 앞에 맹세하고 무시무시한 벌칙을 약속받는 의식을 전합니다.[3] 작가들이 만든 이야기의 무대에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올라간 것입니다.

디텍션 클럽 입회 의식의 상징, 해골 에릭.
디텍션 클럽 입회 의식의 상징, 해골 에릭.출처: conwaystewart.com · 출처

그 맹세의 중심에는 탐정이 주어진 지혜로 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계시나 요행으로 답을 받아오는 대신, 사건 안에서 추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약속입니다. 찰스가 소개한 문구에는 우연과 근거 없는 행운에 기대지 말라는 내용이 익살스럽게 이어집니다.[3]

외형만 보면 무서운 비밀결사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연극으로 꾸몄다고 생각하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독자에게 놀라움을 주던 사람이 동료들 앞에서는 놀라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엄숙한 절차와 장난스러운 형식이 함께 있다는 점이 이 의식의 매력입니다.

입회는 회원들의 비밀 투표를 거치며 맹세의 문구도 세월에 따라 바뀌었습니다.[1] 그래서 어느 시기의 문구 하나를 모든 회원이 영원히 따르는 동일한 법전으로 읽기보다는, 모임이 이어온 전통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04단서를 감추는 것과 의미를 감추는 것

앞선 015편에서 살핀 ‘반칙 금지’ 문제는 이 모임에서도 이어집니다. 범인을 쉽게 알려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독자가 판단할 재료를 얻고, 그 재료를 잘못 해석할 자유도 갖게 하자는 생각입니다. 정답을 감추는 일과 정답에 도달할 가능성까지 없애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차이입니다

식탁 위의 편지를 독자에게 보여주되 그 의미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반면 마지막 장에서야 아무도 보지 못한 편지가 있었다고 알린다면, 독자는 앞선 장면에서 무엇을 추리할 수 있었을까요.

이 예는 원칙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상황입니다. 실제 소설의 재미는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단서가 충분해도 독자는 인물에 대한 믿음 때문에 놓칠 수 있고, 눈앞에 있었던 사실을 중요하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기술은 그 시선의 움직임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클럽의 기묘한 맹세는 이런 창작의 고민을 기억하기 쉬운 장면으로 바꿔놓습니다. 독자에게 사고할 기회를 주겠다는 다짐을 동료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식의 유머와 창작의 진지함은 서로를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05다음 작가에게 사건을 넘겨주다

작가들의 약속은 실제 공동 집필에서 더 까다로운 문제가 됩니다. 한 사람이 사건을 시작하고 다음 사람이 이어 쓴다면, 뒤의 작가는 이미 놓인 단서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이라면 만들지 않았을 상황까지 자신의 장 안에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1931년의 《The Floating Admiral》입니다. 작은 해안 마을에서 배에 실린 시신이 발견되고, 배의 주인과 사라진 인물에 관한 의문이 수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여기서는 그 출발점까지만 살펴봅니다.[4]

《The Floating Admiral》, 1931년 초판 표지.
《The Floating Admiral》, 1931년 초판 표지.출처: en.wikipedia.org · 출처

세이어스가 서문에 설명한 집필 조건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각 작가는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써야 했고, 앞선 작가들이 남긴 어려움을 성실하게 다루어야 했습니다. 단지 다음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수수께끼만 늘리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5]

이 조건을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재미가 또 달라집니다. 우리는 보통 작가가 이미 답을 알고 사건을 배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 쓰는 작가는 앞부분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잠시 독자와 비슷한 자리에 섭니다. 사건을 물려받는 일이 곧 하나의 추리가 되는 셈입니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단서를 추가하는 작가입니다. 해석하는 사람과 설계하는 사람의 역할을 함께 맡습니다. 자신에게는 가능해 보이는 설명이 다음 동료에게 어떻게 읽힐지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공동 집필은 친목의 결과물이면서, 서로 다른 상상력이 같은 조건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06두 달에 한 번, 작가들의 진짜 클럽

입회식만 보면 특별한 날에만 모이는 비밀스러운 단체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디텍션 클럽에는 의식 밖의 일상이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만남을 이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만났을까요. 더글러스 G. 그린의 존 딕슨 카 전기에 실린 글래디스 미첼의 회고에 따르면, 카가 활동하던 당시 회원들은 두 달에 한 번 저녁 식사를 한 뒤 클럽 방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야드나 법의학 분야의 손님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모든 시기에 고정된 일정이었다기보다, 당시 모임의 모습을 전하는 기억입니다.[6]

그들에게는 한때 자신들만의 공간도 있었습니다. 《The Floating Admiral》과 후속 공동 작품의 수익은 런던 소호의 31 Gerrard Street에 방 두 개를 빌리는 데 쓰였습니다. 공동 집필은 재미있는 창작 실험인 동시에, 작가들이 다시 모일 장소를 마련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7]

그 공간은 근사한 비밀결사의 궁전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미첼은 회원들이 가져온 낡은 가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셨다고 기억합니다.[6] 서로 다른 작가들이 남긴 의자와 가구가 한 방에 놓였다는 풍경은, 서로 다른 작가들의 문장이 한 권으로 이어지는 공동소설과도 닮아 보입니다.

대화 주제도 추리작가들의 모임다웠습니다. 마틴 에드워즈는 이들이 실제 범죄 사건이나 출판사와의 일처럼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식사 후에는 범행 방법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도 이어졌습니다.[7] 아무것도 모르고 곁에서 들었다면 꽤 수상한 대화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만날 때마다 해골 에릭 앞에서 새로 맹세한 것은 아닙니다. 입회식은 새로운 회원을 맞이하는 절차였고, 모임의 바탕은 함께 식사하고 교류하는 일이었습니다.[1][3] 책에서는 경쟁하고, 책 밖에서는 작품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쓴 책으로 자신들의 공간까지 마련한 사람들. 디텍션 클럽은 황금시대 작가들의 말 그대로 진짜 ‘클럽’이었습니다.

07비밀 모임이 남긴 공개된 책들

디텍션 클럽의 이야기는 해골 앞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원들은 공동 소설과 작품집을 남겼고, 크리스티는 1957년부터 1976년까지 회장을 맡았습니다.[2] 함께한 시간이 문학사의 작은 일화에 그치지 않고 책과 활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출처: tvtropes.org · 출처

후대에도 이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클럽의 90주년을 기념한 《Howdunit》은 범죄소설 집필에 관한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1] 작품 속에서는 감춰야 했던 기술을 다른 작가와 독자에게 설명하는 일 또한, 이 모임이 남기는 유산의 일부입니다.

《The Detection Club. Le consorelle della setta》 표지.
《The Detection Club. Le consorelle della setta》 표지.출처: www.ibs.it · 출처

‘비밀 모임’이라는 말은 독자의 호기심을 끕니다.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나면,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고 서로의 문제를 들어주며 다음 이야기를 고민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특별한 의식은 그 만남을 기억하게 하고, 공동 집필은 그 관계를 책으로 남깁니다.

독자를 속이는 기술을,
동료에게는 나누던 사람들.

좋은 수수께끼는 혼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왜 쓰는지, 독자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화는 함께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디텍션 클럽을 돌아보는 재미는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보는 데서 시작해, 그들이 나누었을 질문을 상상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와 사진 출처

  1. 마틴 에드워즈 — 디텍션 클럽의 역사와 활동.
  2. 애거서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 — 디텍션 클럽의 결성과 크리스티의 회장 재임.
  3. 케이트 찰스 — 회원이 전하는 입회 의식과 해골 에릭.
  4. 애거서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 — 《The Floating Admiral》 출간 정보와 사건의 도입.
  5. 마틴 에드워즈 — 세이어스의 서문에 소개된 공동 집필 조건.
  6. Douglas G. Greene, John Dickson Carr: The Man Who Explained Miracles — 글래디스 미첼의 회고(두 달에 한 번의 모임과 클럽 방).
  7. Shedunnit, The Detection Club(2020) — 마틴 에드워즈 인터뷰와 31 Gerrard Street의 클럽 공간.

공동 집필 작품은 사건의 도입과 집필 방식만 소개했습니다. 식탁과 독자의 경험에 관한 해설, 편지의 예시는 이 글의 해석과 가상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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