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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뒷이야기 / 작가와 독자의 약속행간소설 · 열다섯 번째 이야기
THE RULES OF DETECTION · 015

속여도 좋다.
다만,
기회는 줄 것.

밴 다인의 스무 규칙과 녹스의 십계.
추리소설 작가들은 왜
스스로 지킬 약속을 적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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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S. 밴 다인, 본명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1930년대.
S. S. 밴 다인, 본명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1930년대.Los Angeles Times · CC BY 4.0 · 출처 ·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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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S. 밴 다인 · 로널드 녹스20규칙 · 1928년 / 십계 · 1929년20규칙과 십계 전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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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들은 왜 ‘반칙 금지 규칙’을 만들었을까? — 밴 다인의 20법칙과 녹스의 십계

영상으로 규칙이 태어난 배경을 만나고, 아래에서 해설과 20규칙·십계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세요.

탐정만 사건을 푸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는 독자도, 같은 사건 앞에 서 있습니다.

01독자가 경기장에 들어온 순간

마지막 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 범인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탐정이 독자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편지를 꺼내 모든 의문을 풀어버린다면요. 결말은 생겼지만, 그 결말을 함께 찾아가는 재미는 사라집니다. 문제를 풀던 사람에게 나중에야 다른 문제지를 건네는 셈입니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탐정이 활약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고, 직접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독서가 시작되면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흥미로운 사건뿐 아니라,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달라는 요구가 생깁니다.

1928년 밴 다인은 추리소설을 게임과 스포츠에 비유하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독자를 이기려면 부당한 속임수가 아니라 재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1] ‘반칙 금지 규칙’은 이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말로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S. S. Van Dine’s Great Detective Game.
S. S. Van Dine’s Great Detective Game.출처: Open Culture · 출처

독자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언제나 목적은 아닙니다. 틀렸더라도 왜 틀렸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즐거움은 남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없었던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앞서 들인 노력은 무의미해집니다. 규칙은 바로 그 허탈함을 막으려 했습니다.

02밴 다인의 스무 가지 요구

밴 다인의 「추리소설을 쓰기 위한 20가지 규칙」은 1928년 9월 《아메리칸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첫 항목은 독자에게 탐정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라는 요구입니다.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고, 그 단서를 분석해 결론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릅니다.[1]

그가 특히 싫어한 것은 우연이나 이유 없는 자백으로 사건을 끝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탐정이 아무런 연결 과정 없이 정답을 알아내면, 독자도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뛰어난 탐정의 능력은 작가만 아는 답을 전달받는 특권과 달라야 했습니다.

목록을 더 읽으면 오늘날 낯설게 느껴지는 요구도 나옵니다. 연애 이야기를 넣지 말라거나 탐정의 수를 제한하는 조항입니다.[1] 이것들은 단서를 공정하게 제시하라는 원칙과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독자를 속이지 않는 방법을 넘어, 자신이 선호하는 소설의 형태까지 규칙으로 정한 것입니다.

공정성의 원칙과 장르 취향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라는 요구와 연애 이야기를 빼라는 요구는 같은 종류의 조건일까요. 하나는 추리에 참여할 기회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이야기의 중심에 둘 것인가에 관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스무 항목을 읽을 때에는 금지 목록을 외우기보다 각 항목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물어보면 좋습니다. 불공정함을 막으려는 조항인지, 수수께끼에 집중하려는 취향인지 구분하면 밴 다인이 꿈꾸던 탐정소설의 모습이 보입니다.

03녹스는 왜 문과 독약까지 제한했을까

영국의 성직자이자 작가 로널드 녹스는 열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1929년 선집 서문에 실린 것으로 알려진 ‘추리소설 십계’입니다. 초반부터 범인이 독자에게 소개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비롯해, 초자연적인 해결이나 근거 없는 직감에 기대지 말라는 요구가 담겨 있습니다.[2]

로널드 녹스(Ronald Knox).
로널드 녹스(Ronald Knox).출처: Cluny Media · 출처

비밀방과 통로에 관한 조항은 구체적입니다. 녹스는 이를 전면 금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습니다. 독약과 장치도 다룹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이나 마지막에 긴 과학 설명이 있어야만 이해되는 장치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2]

이 제한의 의미는 가상의 사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독자가 방의 구조를 바탕으로 출입 경로를 추리하고 있는데, 결말에서 전혀 알 수 없던 출구가 여러 개 생긴다면 기존의 판단은 소용없어집니다. 작가는 벽을 마음대로 뚫을 수 있지만 독자는 이미 읽은 문장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널드 녹스의 추리소설 십계를 소개한 지면.
로널드 녹스의 추리소설 십계를 소개한 지면.출처: Pepper Basham · Facebook · 출처

닮은 사람이나 쌍둥이를 이용할 때도 사전 준비를 요구했습니다.[2] 반전을 없애자는 말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낯선 설명이 나와도, 되돌아보면 그 가능성을 생각해볼 근거가 남아 있기를 바라는 태도입니다.

녹스의 목록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작가가 그 해답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독자가 그 해답을 향해 갈 수 있느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자유만큼 읽는 사람의 위치도 중요해진 것입니다.

04밴 다인의 20규칙 전체

1928년 원문의 스무 조항을 한국어로 풀어 옮겼습니다. 공정성에 관한 원칙뿐 아니라 밴 다인의 취향과 가치판단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특정 작품의 해답과 연결하지 않고 읽을 수 있습니다.

20규칙 전체 펼치기 / 접기
  1. 1. 독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줄 것

    독자에게도 탐정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를 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확하게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2. 2. 독자만을 겨냥한 부당한 속임수를 쓰지 말 것

    범인이 이야기 속 탐정에게 정당하게 사용하는 속임수 외에는, 독자에게 의도적인 기만이나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3. 3. 연애 이야기를 넣지 말 것

    연애는 순수하게 지적인 경험에 무관한 감정을 끼워 넣는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범인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결혼시키는 것이 아니다.

  4. 4. 탐정이나 공식 수사관이 범인이어서는 안 될 것

    탐정 자신이나 공식 수사관 가운데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밴 다인은 이를 값싼 동전을 금화인 것처럼 내미는 것에 비유하며, 독자를 속이는 부당한 거래라고 본다.

  5. 5. 범인은 논리적 추론으로 밝혀질 것

    우연이나 뜻밖의 일치, 동기 없는 자백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독자를 헛되이 찾아다니게 한 뒤, 작가가 처음부터 답을 소매 속에 감추고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6. 6. 탐정은 실제로 추리할 것

    탐정소설에는 탐정이 있어야 하며, 탐정은 단서를 모아 분석함으로써 범인에게 도달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결론을 얻는 것은 학생이 산수책 뒤의 정답을 베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7. 7. 살인사건을 다룰 것

    탐정소설에는 시체가 있어야 하며, 살인보다 가벼운 범죄로는 충분하지 않다. 밴 다인은 긴 책을 읽는 독자의 노력에 걸맞은 사건이 필요하고, 살인이 독자의 공포와 정의 실현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8. 8. 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

    영매의 글쓰기, 위저 보드, 독심술, 강령회, 수정구슬 같은 수단으로 진실을 알아내서는 안 된다. 독자는 합리적인 탐정과는 겨룰 수 있지만, 영혼의 세계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

  9. 9. 추론을 이끄는 탐정은 한 사람일 것

    추리의 주역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여러 탐정의 지혜를 합치면 관심이 분산되고 논리의 흐름이 흐트러지며, 독자는 누구와 겨루는지도 불분명해진다. 밴 다인은 이를 한 사람에게 계주 팀과 달리기 경주를 시키는 것에 비유한다.

  10. 10. 범인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일 것

    독자가 알고 관심을 가진,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인물이 범인이어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 낯선 사람이나 거의 등장하지 않은 인물에게 죄를 돌리는 것은 작가가 독자와 지혜를 겨룰 능력이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11. 11. 하인을 범인으로 삼지 말 것

    집사, 하인, 시종, 사냥터 관리인, 요리사 등을 범인으로 골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너무 쉽고 만족스럽지 않은 해결로 여기며, 범인은 통상 의심하기 어려운 비중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조항에는 직업과 계층을 낮춰 보는 원문의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

  12. 12. 책임의 중심이 되는 범인은 한 사람일 것

    살인이 몇 건이든 중심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작은 역할의 조력자나 공모자는 둘 수 있지만, 범행의 책임과 독자의 분노는 한 인물에게 모여야 한다.

  13. 13. 비밀결사나 조직범죄를 끌어들이지 말 것

    비밀결사, 카모라, 마피아 등은 탐정소설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 요소는 모험소설이나 첩보 이야기의 영역이며, 범인에게 은신처와 조직적 보호를 제공하면 경찰과의 대결에서 지나친 이점을 준다는 주장이다.

  14. 14. 범행과 수사 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것

    사이비 과학이나 작가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장치는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 발견했다는 초라듐 같은 원소나 정체불명의 약물을 해답으로 써서는 안 된다. 독약은 실제 약물 지식의 범위 안에서 다뤄야 하며, 그 경계를 넘어선 환상은 다른 종류의 모험소설에 속한다고 본다.

  15. 15. 다시 읽으면 진실이 드러나 있어야 할 것

    충분히 예리한 독자에게는 진실이 언제나 보일 수 있어야 한다. 해답을 안 뒤 다시 읽으면 단서들이 처음부터 범인을 가리켰고, 자신도 더 영리했다면 마지막 장 전에 풀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공정하게 구성한 사건이라면 일부 독자가 작가나 탐정만큼 예리하게 분석하고 소거하며 정답에 도달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바로 그것이 게임의 재미라고 본다.

  16. 16. 수수께끼와 무관한 장황함을 피할 것

    긴 묘사, 주변 문제를 다루는 문학적 곁가지, 섬세한 인물 분석, 분위기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배제하라고 한다. 다만 현실감과 인물·사건에 대한 관심을 만들 정도의 묘사는 필요하다. 그 이상으로 본래의 문제 제시·분석·해결을 지연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밴 다인은 이를 야구 경기 도중의 자연 예찬이나 낱말퍼즐 사이의 어원 강의에 비유한다.

  17. 17. 직업 범죄자에게 죄를 맡기지 말 것

    빈집털이나 강도의 범죄는 경찰의 일상적인 업무에 속한다고 보며, 소설의 뛰어난 아마추어 탐정이 다룰 사건과 구별한다. 그가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나 자선으로 이름난 독신 여성처럼, 평소 존중받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다.

  18. 18. 사고나 자살로 끝내지 말 것

    범죄로 시작한 사건을 마지막에 사고나 자살이었다고 끝내서는 안 된다. 긴 추리 끝에 범죄 자체가 없었다고 하면 독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허탈한 결말이라고 본다. 그는 그런 책의 독자가 책값 반환을 요구해도 정당할 것이라는 비유까지 사용한다.

  19. 19. 범행 동기는 개인적일 것

    국제적 음모와 전쟁 정치는 첩보소설 같은 다른 범주에 속한다. 살인사건은 독자의 일상적 경험과 연결되고, 개인적인 욕망과 감정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 20. 너무 자주 쓰인 장치를 되풀이하지 말 것

    아래 장치들은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되어 독자에게 익숙해졌으므로, 다시 쓰는 것은 기교와 독창성의 부족을 드러낸다고 본다.

    1. 현장의 담배꽁초와 용의자가 피우는 상표를 비교해 범인을 알아내는 방법
    2. 가짜 강령회로 범인을 겁주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방법
    3. 위조 지문
    4. 인형이나 모형을 이용한 알리바이
    5. 개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로 침입자가 낯익은 사람임을 밝히는 방법
    6. 결말에서 쌍둥이나 무고한 용의자를 닮은 친척에게 범행을 돌리는 방법
    7. 피하주사기와 사람을 의식 잃게 하는 약물
    8.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간 뒤에야 실제 살인이 이루어지는 밀실 장치
    9. 단어 연상 검사로 죄를 밝히는 방법
    10. 탐정이 마침내 풀어내는 암호 또는 암호 편지

05로널드 녹스의 십계 전체

십계의 열 조항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5번의 민족 차별적 규정은 역사적 원문을 설명하기 위해 표시했으며, 오늘의 창작 지침으로 권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십계 전체 펼치기 / 접기
  1. 1. 범인은 초반에 등장할 것

    범인은 이야기 초반에 언급된 사람이어야 한다. 다만 독자가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허용된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2. 2.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할 것

    초자연적이거나 자연의 범위를 벗어나는 모든 작용은 당연히 배제한다.

  3. 3. 비밀방과 비밀통로는 하나를 넘지 말 것

    비밀방 또는 비밀통로를 하나보다 많이 허용해서는 안 된다.

  4. 4. 알려지지 않은 독약과 복잡한 장치를 쓰지 말 것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독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끝에서 긴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장치도 써서는 안 된다.

  5. 5. 중국인을 등장시키지 말 것

    원문은 중국인을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지 말라고 규정한다. 특정 민족을 배제하는 시대적 편견이 담긴 조항이다.

  6. 6. 우연이나 설명되지 않는 직감이 돕지 못하게 할 것

    우연이 탐정을 도와서는 안 된다.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전개도 허용하지 않는다.

  7. 7. 탐정 자신이 범인이어서는 안 될 것

    탐정이 직접 범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8. 8. 발견한 단서를 독자에게도 보여줄 것

    탐정이 얻은 단서는 즉시 독자가 살펴볼 수 있도록 제시되어야 한다.

  9. 9. 동행자의 생각을 감추지 말 것

    탐정의 우둔한 친구, 즉 ‘왓슨’ 역할의 인물은 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독자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 그의 지능은 평균적인 독자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낮아야 한다.

  10. 10. 쌍둥이와 닮은 사람은 미리 준비할 것

    쌍둥이 형제나 매우 닮은 사람은 독자가 그 등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나타나서는 안 된다.

06공정한 게임에도 시대의 한계가 있었다

오래된 규칙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녹스의 십계에는 중국인을 등장시키지 말라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2] 특정 민족을 일괄적으로 배제하는 문장 자체가 당시의 편견을 드러냅니다.

이를 오늘날의 작법 지침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공정한 추리를 말하는 목록 안에, 인물을 국적과 민족으로 제한하는 요구도 함께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는 편이 중요합니다. 작품의 구성에 대한 유용한 통찰과 시대적 한계는 같은 글 안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밴 다인 역시 하인을 범인으로 삼지 말라는 등 계층에 대한 판단을 규칙에 포함했습니다.[1] 무엇을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고 누구를 충분히 흥미로운 인물로 보았는지에 당시의 시선이 묻어납니다. ‘규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중립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목록을 두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독자의 추리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이야기와 인물을 장르의 바깥으로 밀어냈는가입니다. 앞의 성취를 이해하면서 뒤의 한계를 비판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07혼자 쓰는 작가들이 함께 이야기한 기준

규칙에 관한 관심은 두 작가의 목록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1930년에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디텍션 클럽을 결성했습니다.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는 애거서 크리스티, 도러시 L. 세이어스, G. K. 체스터턴 등이 참여한 모임으로 소개합니다.[3]

작가들은 함께 식사하고, 입회 의식을 치르고, 공동으로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클럽의 맹세에는 독자를 공정하게 대하고 해결할 중요한 단서를 감추지 않겠다는 생각이 담겼습니다.[3] 개인의 작업실에서 고민하던 문제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할 주제가 된 것입니다.

1920년대 분위기의 삽화.
1920년대 분위기의 삽화.출처: Caron Allan Fiction · 출처

다만 밴 다인의 스무 규칙, 녹스의 십계, 클럽의 맹세를 하나의 동일한 규정집으로 합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서로 통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형식과 내용, 만들어진 맥락이 다릅니다. 여러 작가가 같은 문제를 놓고 각자의 언어로 기준을 세웠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1926년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1928년 밴 다인의 글, 1929년 녹스의 십계, 1930년 디텍션 클럽을 순서대로 놓아보면 장르의 논의가 이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4][1][2][3] 어느 한 작품을 처벌하기 위한 공통 법전이 갑자기 만들어졌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08남은 것은 금지 목록보다 독자의 기회

오늘의 독자는 연애가 등장한다고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 수사관이 협력하는 이야기도 즐깁니다. 밴 다인이 수수께끼의 집중력을 위해 걷어내고 싶어 했던 요소들이 누군가에게는 작품을 읽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장르가 다양해지면 독자와 맺는 약속도 달라집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가능한 세계를 처음부터 제시한 작품과, 모든 일을 현실적인 추리로 설명하겠다고 출발한 작품을 똑같이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입니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주 읽은 독자는 다음 장면을 예상하고, 작가는 그 예상에서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규칙이 창작을 제한하는 울타리인 동시에, 익숙해진 기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그곳으로 갈 길은 열려 있었을까요.

책을 덮고 앞부분을 돌아볼 때, 자신이 놓쳤던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반드시 모든 독자가 미리 해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읽는 동안 생각할 기회를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 년 전 작가들이 남긴 금지 목록에서 오늘도 건져낼 만한 것은 바로 그 독자의 자리입니다.

참고한 자료와 사진 출처

  1. S. S. Van Dine, Twenty Rules for Writing Detective Stories — 1928년 9월 원문 재수록.
  2. Ronald Knox, Father Knox’s Decalogue — 추리소설 십계 재수록.
  3. 애거서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 — 디텍션 클럽의 결성과 활동.
  4. 애거서 크리스티 공식 사이트 —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출간 기록.

규칙은 링크한 영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어로 풀어 옮겼습니다. 원문에 담긴 가치판단과 오늘의 해설을 구분해 읽을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가상의 사례와 독자의 경험에 관한 설명은 이 글의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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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 · 014. 애거서 크리스티는 반칙을 했을까 —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논쟁 →